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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 년간의 장마 (트라이아스기, 공룡 번성, 기후 변화)

라이프플랜 2026. 10. 20. 11:14

목차


    200만 년간의 장마

     

    솔직히 저는 장마를 그냥 불편한 계절 탓으로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약 2억 3,400만 년 전 트라이아스기 후기에 200만 년 동안 비가 이어진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며칠 비가 왔다고 투덜대던 제 자신이 좀 멋쩍어졌습니다.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Carnian Pluvial Episode)이라 불리는 이 시기는 지구 생태계를 뒤흔들었고, 공룡이 지구의 주인공 자리에 오르는 결정적인 배경이 됐습니다.



    트라이아스기의 200만 년 장마,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이란

    제가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200만 년 동안 비가 왔다고?"였습니다. 며칠만 장마가 이어져도 기분이 처지는데, 그 규모가 지질학적 시간 단위라니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트라이아스기 후기 이전까지 지구는 지독하게 건조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지구에는 초대륙 판게아(Pangaea)가 존재했는데, 여기서 판게아란 현재의 모든 대륙이 하나로 붙어 있던 거대한 땅덩어리를 말합니다.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진 대륙 내부까지 수분이 닿기 어려웠고, 그 결과 광활한 육지 대부분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에 가까운 환경이었습니다. 이 시기 지층에서 붉은 사암층이 자주 발견되는 이유가 바로 그 건조함 때문입니다.

    이런 통념을 뒤집은 건 1989년 영국의 지질학자 심즈(Simms)와 러펠(Ruffell) 박사였습니다. 이들은 유럽의 케오퍼스 지층에서 강과 큰 호수의 퇴적물, 그리고 늪지대의 흔적을 발견했고, 약 200만 년에 걸쳐 지구 기후가 습윤한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학계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특히 지질학자 행크 피셔(Hank Fischer)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강과 호수의 형성이 일시적인 지역 현상일 뿐이라며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탈리아의 고대 호수 흔적, 미국 서부의 광범위한 습윤 토양층, 중국의 대규모 강 흔적이 연달아 발굴됐고, 이 모두가 2억 3,400만 년 전에서 2억 3,200만 년 전 사이에 형성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결국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은 특정 지역의 이상 기후가 아닌 전 지구적 현상으로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 우기가 왜 시작됐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두 가지 가설이 경합 중입니다.

    • 화산 활동 가설: 캐나다 서부 랭겔리아(Wrangellia) 지층의 대규모 화산 폭발이 온실 가스를 대량 방출했고, 지구 온난화로 인한 수분 증발 증가가 강수량을 끌어올렸다는 주장입니다.
    • 조산 운동 가설: 킨메리아(Cimmeria) 산맥이 북상하면서 신(新)테티스해에서 만들어진 구름이 산맥에 막혀 주변 대륙에 집중적으로 비를 뿌렸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서 테티스해란 과거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이에 존재했던 고대 바다를 말합니다.

    두 가설 모두 아직 논쟁 중이고, 어느 한쪽이 완전히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조산 운동 가설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산맥 하나가 대륙 전체의 강수 패턴을 200만 년 동안 바꿔놓을 수 있다는 발상이 실감 나게 다가왔거든요.

    한 가지 짚고 싶은 건, 이 우기가 생물들에게 무조건 좋은 환경을 가져다준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2020년 지질학자 자쿠토 달 코르소(Jacopo Dal Corso)의 연구에 따르면,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은 5대 대멸종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해양 생물 속의 약 35%가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출처: Nature). 강을 통해 바다로 흘러든 다량의 무기 염류가 부영양화(eutrophication)를 일으킨 것이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여기서 부영양화란 수중에 영양염류가 과도하게 늘어나 해양 플랑크톤이 폭발적으로 증식하고, 그 결과 바닷속 용존 산소량이 급감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암모나이트류와 코노돈트류도 이 시기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요약: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은 약 2억 3,400만 년 전 시작된 전 지구적 기후 변화로, 200만 년간 이어진 강수 증가는 해양 생물의 35% 소멸을 불러온 동시에 육상 생태계를 완전히 재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공룡 번성의 진짜 이유, 강함이 아니라 적응이었다

    공룡 하면 처음부터 강력한 포식자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은 꽤 달랐습니다.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 이전, 육상 생태계에서 공룡의 비율은 전체 파충류의 5~10%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지구는 피토사우루스류(phytosaurs)가 속한 크루로타르시(Crurotarsi) 계열 파충류와 노도사우루스 같은 단궁류(synapsids)의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을 거치고 나면 공룡 그룹의 비율이 90%에 가까운 수준으로 뛰어오릅니다. 제가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200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태계 구성이 그토록 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거든요.

    이 변화를 이끈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우선 식물상의 변화입니다. 건조한 환경에서는 키 작은 초목류가 주를 이뤘지만, 강수량이 늘면서 침엽수와 소철류처럼 키가 크고 잎과 줄기가 질긴 식물들이 퍼져나갔습니다. 당시 초식 공룡들은 위석(胃石, gastroliths)을 갖고 있었는데, 여기서 위석이란 위 속에서 질긴 식물 섬유를 잘게 부수는 역할을 하는 돌을 말합니다. 덕분에 다른 초식 동물들이 소화하지 못하는 식물을 공룡은 먹을 수 있었고, 먹이 경쟁에서 뚜렷한 우위를 가졌습니다.

    두 번째는 호흡 구조입니다. 공룡은 조류와 유사한 기낭(air sac)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기낭이란 폐와 연결된 공기주머니로, 숨을 들이쉴 때와 내쉴 때 모두 산소를 흡수할 수 있어 일반 파충류보다 훨씬 효율적인 호흡이 가능합니다. 당시 지구는 산소 농도가 낮았던 시기였는데, 이 기낭 구조 덕분에 공룡은 다른 동물들이 힘들어하는 환경에서도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출처: ScienceDirect).

    세 번째는 직립보행입니다. 기존 파충류들이 몸을 옆으로 눕히며 걷는 방식이었던 반면, 공룡은 다리를 몸 아래에 두고 서는 직립 자세를 취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세는 빠른 기동력과 함께 키 큰 식물에 접근하는 데도 유리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공룡의 번성을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 하나로 단순화하는 건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기 이후 생태계의 빈자리가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공룡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었던 건 위석, 기낭, 직립보행이라는 해부학적 강점들이 변화한 환경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원인 하나로 결과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들릴수록, 그 이면의 복잡성을 함께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이번 공부를 통해 다시 느꼈습니다.

    요약: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 이후 공룡의 비율이 90%까지 급증한 배경에는 위석·기낭·직립보행이라는 해부학적 특징이 바뀐 환경과 맞아떨어진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은 5대 대멸종에 포함되나요?

    A. 포함되지 않습니다. 다만 해양 생물 속의 약 35%가 사라지는 상당한 규모의 생물 다양성 감소가 있었습니다. 5대 대멸종처럼 단기간에 급격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200만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기후 변화였기 때문에 분류가 다르게 됩니다.

     

    Q.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이 왜 시작됐는지 밝혀졌나요?

    A.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학계에서는 캐나다 서부 랭겔리아 화산 활동에 의한 온난화 가설과, 킨메리아 산맥의 북상으로 인한 강수 패턴 변화 가설이 경합 중입니다. 어느 한 가설이 정설로 확정된 단계는 아닙니다.

     

    Q. 공룡은 트라이아스기 이전에도 존재했나요?

    A. 네, 공룡은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 이전인 트라이아스기 중기부터 이미 등장해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 전체 파충류에서 공룡이 차지하는 비율은 5~10%에 불과했고,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을 거치면서 90% 가까이 비율이 급증했습니다.

     

    Q. 부영양화가 왜 해양 생물에게 문제가 됐나요?

    A. 강을 통해 바다로 다량의 무기 염류가 흘러들면서 해양 플랑크톤이 폭발적으로 증식했습니다. 플랑크톤이 급증하면 바닷속 용존 산소량이 크게 줄어들고,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는 기존 해양 생물들이 생존하기 어려워집니다. 이것이 암모나이트류와 코노돈트류를 포함한 많은 해양 생물이 이 시기에 큰 타격을 입은 이유입니다.

     

    결론

    장마철마다 짜증부터 냈던 제가 이번에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며칠간의 비도 버겁게 느껴지는데, 200만 년에 걸친 우기가 지구 생태계 전체를 바꿔놓았다는 사실은 자연의 변화가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해줬습니다.

    한 가지 더 제 경험상 느낀 점은, 과학 이야기가 흥미로울수록 "확인된 사실"과 "아직 연구 중인 가설"을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과 공룡 번성의 연관성은 설득력 있지만, 그 원인과 메커니즘은 여전히 논쟁 중인 부분이 있습니다. 자연은 단 하나의 이유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기후 변화가 단순히 기온만이 아니라 물의 흐름, 식물 분포, 먹이사슬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충분히 새겨둘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AtfE1rcvq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