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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식인 행위는 단순한 공포 소재가 아닙니다. 극한의 생존 상황, 종교적 장례 의식, 그리고 그로 인해 퍼진 치명적인 질병까지 카니발리즘을 둘러싼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처음 이 주제를 접했을 때 저도 단순히 기괴한 이야기 정도로 넘겼는데, 파고들수록 인간의 생존 본능과 진화, 윤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카니발리즘이라는 단어는 어디서 왔을까
역사나 과학 이야기를 찾아보다 보면 가끔 "이게 사실이었어?" 싶은 순간이 옵니다. 카니발리즘(Cannibalism), 즉 식인 행위라는 단어의 기원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저는 막연히 오래된 라틴어 어원일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콜럼버스의 오해에서 비롯된 단어였습니다.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자신이 아시아 인도에 닿았다고 착각했습니다. 당시 그는 원주민들을 몽골 제국의 칸(Khan)의 후손이라 여기고 '카니바스(Canibas)'라 불렀는데, 이 명칭이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식인종을 뜻하는 단어로 굳어졌습니다. 나중에 소문 자체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단어는 이미 정착한 뒤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꽤 허탈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쓰인 단어 하나가 콜럼버스의 오해와 과장된 소문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 말이죠. 카니발리즘이라는 개념 자체가 오리엔탈리즘적 편견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부분이 꽤 타당하다고 봅니다. 단어 하나가 특정 집단 전체를 야만으로 규정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 속 식인 행위, 정말 있었나
식인 행위가 실제로 있었느냐는 질문에 "아마도"라고 답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고고학적 증거들을 보고 나서는 꽤 확실히 "있었다"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다만 그 맥락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실비아 벨로 박사는 영국 남서부 협곡에서 14,700년 전 현생 인류의 유골을 발견했습니다. 일부 두개골이 마치 그릇처럼 매끄럽게 가공된 점, 절단 흔적이 남은 뼈 등을 근거로 당시에도 식인 풍습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출처: 영국 자연사박물관).
그보다 훨씬 최근인 17세기 초 미국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서도 식인 행위의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1609년 기록에 따르면 혹독한 기근 속에서 정착민들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먹었다는 내용이 남아 있고, 2013년 발굴된 14세 소녀의 두개골에서 칼로 살점을 긁어낸 흔적이 확인됐습니다. 1972년 안데스산맥에 추락한 우루과이 항공편 571 생존자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구조 가능성도 불확실하고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죽은 동료의 시신을 먹은 생존자들의 선택 —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례들이 제각각 다른 배경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생존을 위한 극한의 선택, 장례 의식의 일부, 종교적 의미 부여 등을 모두 하나로 묶어 "야만적인 식인종"으로 단정짓는 것은 당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14,700년 전 유골: 두개골 가공 흔적, 절단된 뼈 등 고고학적 증거
- 제임스타운(1609년): 극심한 기근 속 생존을 위한 식인 행위 기록
- 우루과이 항공편 571(1972년): 조난 상황에서 생존자들의 불가피한 선택
- 파푸아뉴기니 포레족: 장례 의식으로 행해진 식인 풍습, 쿠루병과 직결
사람을 먹는 게 진화적으로 불리한 이유
식인종 집단이 인류 역사에서 상습적으로 존재했을 가능성을 묻는다면, 저는 진화적 관점에서 봤을 때 거의 없었을 거라는 쪽입니다. 이건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생존 전략의 문제입니다.
2017년 영국 브라이튼 대학의 고고학자 제임스 콜 박사는 인체 부위별 열량을 실제로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체중 65kg 성인 남성 기준으로 허벅지가 약 13,350kcal, 피부는 약 10,280kcal, 상박은 약 7,450kcal에 달합니다. 인체 전체의 총 열량은 약 10만~14만 kcal로 추산됩니다(출처: Scientific Reports, Cole 2017).
여기서 콜 박사의 핵심 주장이 나옵니다. 인체 한 명의 열량은 25명이 반나절을 버티는 정도에 불과한 반면, 매머드 한 마리의 근육량만 해도 약 360만 kcal에 달해 같은 집단이 두 달은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자신과 신체 능력이 비슷한 인간을 사냥하는 것은 위험 대비 열량 수익이 형편없이 낮다는 얘기입니다.
진화적 관점에서 동종 포식(同種捕食), 즉 같은 종을 잡아먹는 행위는 다른 동물의 세계에서도 짝짓기나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이 아니면 드뭅니다. 자신과 체력, 지능이 엇비슷한 상대를 사냥하는 건 부상 위험이 크고 에너지 소모도 많습니다. 논리적으로 따져봐도 식인을 일상적인 식량 조달 방식으로 삼는 집단이 오래 생존하기는 어렵습니다.
쿠루병과 프리온, 식인 행위가 부른 질병
식인 행위가 생존 전략으로서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1950년대 파푸아뉴기니의 포레족(Fore族)에게서 발생한 쿠루병(Kuru disease)입니다. 쿠루병이란 온몸의 근육이 제 기능을 잃고, 심한 떨림과 함께 결국 폐렴으로 사망에 이르는 신경계 질환입니다. '쿠루'라는 이름 자체가 포레족 언어로 "몸이 떨린다"는 뜻입니다.
1957년 미국 소아과 의사 대니얼 가이듀섹 박사가 이 병의 원인을 밝혀냈습니다. 포레족은 사람이 죽으면 고인의 뇌와 장기를 꺼내어 여성들이 먹는 장례 풍습을 가지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프리온(Prion)이라는 병원성 물질이 전파됐습니다. 여기서 프리온이란 DNA나 RNA 같은 유전물질이 없는 단백질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정상 단백질을 비정상 구조로 변형시키며 뇌세포를 파괴하는 감염성 물질입니다. 쉽게 말해 바이러스도 세균도 아닌데 감염되는, 상당히 이례적인 병원체입니다.
이 병이 특히 여성들에게 집중된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뇌와 장기를 주로 여성들이 먹었기 때문입니다. 프리온은 같은 종 내에서 전파 효율이 훨씬 높습니다. 돼지 체내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되려면 일정한 돌연변이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사람의 프리온은 사람에게 변이 없이 곧바로 감염됩니다.
제가 이 부분을 처음 읽었을 때 꽤 오랫동안 멈추게 됐습니다. 단순히 무섭다는 게 아니라, 인간의 몸을 먹는 행위가 의식이든 생존이든 관계없이 공동체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쿠루병 사례는 식인 행위가 왜 자연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역사적으로 식인종 부족이 실제로 존재했나요?
A. 식인 행위 자체는 고고학적으로 확인되지만, 영양 보충을 목적으로 사람을 일상처럼 먹는 집단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례는 생존을 위한 극단적 선택이거나 종교적·장례적 의식의 일환이었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야만적인 식인종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콜럼버스 시대의 편견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사람 고기의 칼로리가 실제로 낮은 편인가요?
A. 절대적인 수치로는 인체 한 명의 총 열량이 약 10만~14만 kcal에 달합니다. 하지만 제임스 콜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25명이 반나절 버티는 수준에 불과해, 매머드 한 마리로 같은 집단이 두 달을 버티는 것과 비교하면 열량 효율이 매우 낮습니다. 위험 대비 얻는 에너지가 적다는 점에서 진화적으로 불리한 선택이었습니다.
Q. 쿠루병은 어떻게 전파되고 지금도 존재하나요?
A. 쿠루병은 프리온이라는 감염성 단백질을 통해 감염됩니다. 포레족이 장례 의식에서 죽은 사람의 뇌를 섭취하면서 퍼졌고, 이 풍습이 금지된 뒤 발병률은 크게 줄었습니다. 잠복기가 수십 년에 달하는 경우도 있어 20세기 후반까지 산발적으로 발생했지만, 현재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Q. 사람이 사람 똥 냄새를 가장 역겹게 느끼는 게 진짜인가요?
A. 인도 밀린드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실험 참가자들이 13종의 동물 배설물 냄새 중 사람의 것을 가장 역겹다고 반응했습니다. 생물학자들은 같은 종의 배설물에 자신에게 감염될 기생충이 가장 많이 포함되기 때문에, 인간이 본능적으로 동종의 배설물을 더 강하게 혐오하도록 진화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동종 섭취에 대한 본능적 거부 반응과도 연결됩니다.
결론
식인 행위는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주제를 파고들면서 느낀 건, 그 이유를 도덕 하나로만 설명하면 오히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서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진화적 불리함, 열량 효율, 질병 전파 위험까지 과학적으로 뜯어보면 왜 식인이 인류 전체의 선택지가 되지 못했는지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해와 동의는 다른 문제입니다. 극한의 생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당시 문화와 환경이 어떠했는지를 함께 살펴야 과거의 인간 행동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식인 행위에 관심이 생겼다면 고고학적 증거와 인류학 연구를 함께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그만큼 인간이라는 존재가 깊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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