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생활정보

마리아나 해구 (심해 생물, 극한 환경, 해양 보호)

라이프플랜 2026. 10. 16. 10:15

목차


    마리아나 해구

     

    저도 처음엔 바다라고 하면 여름 해변이나 알록달록한 산호초 정도만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 수심 11km 아래 챌린저 해연에서 투명한 피부를 가진 물고기와 알루미늄 갑옷을 두른 새우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서 제가 알던 바다가 얼마나 좁은 시야였는지 실감했습니다. 극한 환경에서 오히려 생존법을 찾아낸 생명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이 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인지 정리해 봤습니다.



    생명이 불가능하다던 곳에서 발견된 것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서태평 양 괌에서 남서쪽으로 약 340km 떨어진 마리아나 해구는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진 거대한 해저 균열입니다. 그 안에서도 가장 깊은 지점이 챌린저 해연으로, 수심 약 10,935m에 달합니다. 서울 남산타워를 46개 쌓아야 닿을 수 있는 깊이입니다.

    과학계는 오랫동안 이곳을 생명 불모지로 봤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수압이 손바닥 크기 면적에 코끼리 다섯 마리 무게가 실리는 수준이고, 수온은 얼음에 가까우며, 햇빛은 단 한 줄기도 도달하지 않습니다. 일반 잠수함이 버틸 수 있는 수심 600m의 18배가 넘는 깊이입니다. 그 믿음이 깨진 건 1960년 2월 23일이었습니다. 스위스 과학자 자크 피카르와 미 해군 돈 월시가 잠수정 트리에스테를 타고 챌린저 해연 바닥에 최초로 도달했을 때, 희미한 조명 아래 새우 형태의 생물과 가자미를 닮은 물고기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2012년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혼자 같은 장소로 내려가 촬영한 영상에는 더 낯선 장면이 담겼습니다. 박테리아들이 실처럼 엮여 해저 바닥을 뒤덮은 필라멘트 매트였습니다. 여기서 필라멘트 매트란 미생물이 실 모양으로 연결되어 카펫처럼 깔린 구조물을 말합니다. 이들은 태양 에너지 대신 화학합성으로 살아갑니다. 화학합성이란 햇빛 없이 황화수소나 메탄 같은 화학 물질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 방식으로, 광합성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생명이 택한 대안적 생존 전략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처음 접했을 때 건전지에서 전기를 뽑아 쓰듯 암석에서 에너지를 뽑는다는 발상 자체가 믿기 어려웠습니다.

    1996년 일본의 무인 잠수정 카이코가 발견한 히론델리아 기가스는 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크기가 34cm에 달하는 거대 단각류인데, 단각류란 새우나 게처럼 딱딱한 외골격을 가진 소형 갑각류를 뜻합니다. 문제는 이 깊이의 극심한 수압이 일반적인 탄산칼슘 외골격을 녹여버린다는 점입니다. 연구 결과, 이 생물은 먹이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해저 진흙 속 알루미늄을 추출해 외골격에 코팅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음료수 캔과 같은 금속을 스스로 만들어 갑옷으로 쓰는 겁니다. 2014년에는 마리아나 스네일피시라는 물고기가 수심 8,000m 지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눈은 거의 퇴화했고 피부는 반투명하여 내장이 비쳐 보입니다. 단단한 뼈 대신 연골과 유연한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연골이란 귀나 코를 이루는 물렁물렁한 조직으로 압력을 고르게 분산시키는 데 유리합니다. 또 지름 20cm까지 자라지만 단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원생생물 제노피오피에라도 이곳에서 서식합니다.

    • 챌린저 해연: 수심 약 10,935m, 인류가 직접 도달한 사람은 단 3명
    • 히론델리아 기가스: 알루미늄으로 외골격을 코팅하는 34cm 크기의 거대 단각류
    • 마리아나 스네일피시: 연골 구조로 수압을 분산하는 반투명 심해어
    • 화학합성 박테리아: 햇빛 없이 황화수소·메탄에서 에너지를 얻는 미생물
    • 제노피오피에라: 단일 세포로 20cm까지 자라는 원생생물

    심해 생물 연구는 실용 가치도 있습니다. 고압 환경에서도 작동하는 효소는 산업 공정에 활용될 수 있고, 일부 제약 기업은 이미 심해 생물 유래 물질로 신약을 개발 중입니다. 심해 생물의 유전 정보 분석은 생명의 기원 연구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출처: NOAA 국립해양대기청).

    요약: 마리아나 해구의 극한 환경에서도 화학합성, 금속 코팅, 연골 구조 등 독자적인 방식으로 적응한 생명체들이 실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발견보다 더 중요한 것, 지키는 일

    제 경험상 신기한 이야기일수록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질문이 뒤따릅니다. 마리아나 해구 이야기도 처음에는 그냥 신기한 자연 다큐로 넘길 뻔했습니다. 그런데 2019년 탐험가 빅터 베스코보가 챌린저 해연 바닥에서 발견한 것이 플라스틱 봉지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사람이 직접 찾아간 적도 거의 없는 11km 아래에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연구진이 채취한 심해 생물 조직에서는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었습니다. 미세플라스틱이란 플라스틱이 잘게 부서진 5mm 이하의 조각으로, 생물 체내에 축적되어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줍니다(출처: IUCN 국제자연보전연맹). 제가 매일 사용하고 버리는 플라스틱이 결국 어디까지 흘러가는지, 이 사실 하나가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더 복잡한 문제는 심해 광물 채굴 계획입니다. 해저에는 망간 단괴라는 검은 돌덩이가 있습니다. 망간 단괴란 해저 바닥에 감자처럼 쌓인 광물 덩어리로, 내부에 스마트폰과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코발트·니켈 같은 희귀 금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부 기업이 채굴을 추진 중이지만, 이 과정에서 해저 생태계가 회복 불가능하게 파괴될 수 있습니다.

    저는 개발을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체 면적의 1%도 탐사되지 않은 공간을 대상으로 채굴부터 시작하는 건 순서가 잘못됐다고 봅니다. 개발로 얻는 경제적 이익은 빠르게 계산할 수 있지만, 한 번 훼손된 심해 생태계가 회복되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아직 이름도 붙이지 못한 생물이 멸종한 뒤에는 그 손실을 계산할 방법조차 없습니다.
    <br">또 한 가지 짚고 싶은 건 정보를 접하는 태도입니다. '지옥 같은 환경', '외계 생명체' 같은 표현은 분명 흥미를 끌지만, 과학은 그 극적인 묘사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히론델리아 기가스의 알루미늄 코팅 메커니즘이 모든 단각류에 해당하는 건 아니고, 특정 조건과 종에서 확인된 결과입니다. 제가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도 '모든 심해 생물이 다 이런 건가?' 하고 과도하게 일반화할 뻔했습니다. 재미있게 읽는 것과 정확하게 이해하는 건 서로 다른 일입니다.

    마리아나 해구가 보여주는 것은 생명의 강인함만이 아닙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자연을 함부로 대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볍게 여기는 위험도 커진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요약: 심해까지 도달한 미세플라스틱 오염과 무분별한 광물 채굴 계획은, 탐사도 채 끝나지 않은 생태계를 위협하는 시급한 문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마리아나 해구에는 왜 그렇게 생명체가 살기 어렵다고 하나요?

    A. 수심 약 11km에 달하는 이곳은 수압이 손바닥 크기 면적에 코끼리 다섯 마리 무게가 실리는 수준이고, 수온은 1~4℃로 매우 낮으며 햇빛이 전혀 도달하지 않습니다. 일반 잠수함이 버틸 수 있는 한계 수심의 18배가 넘어 탐사 장비를 만들기도 극히 어렵습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겹치기 때문에 오랫동안 생명 불모지로 여겨졌습니다.

     

    Q. 심해 생물들은 햇빛 없이 어떻게 에너지를 얻나요?

    A. 대부분의 심해 박테리아는 화학합성을 이용합니다. 화학합성이란 황화수소나 메탄 같은 화학 물질을 분해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식물의 광합성과 달리 빛이 전혀 필요 없습니다. 이 박테리아가 먹이사슬의 기반이 되어 그 위에 새우, 물고기 등 다양한 생물이 연결됩니다.

     

    Q. 심해에서도 플라스틱 오염이 심각한가요?

    A. 2019년 챌린저 해연 바닥에서 플라스틱 봉지가 발견되었고, 채취한 심해 생물 조직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었습니다. 미세플라스틱은 5mm 이하로 잘게 부서진 플라스틱 조각으로, 생물 체내에 축적되어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줍니다. 인간이 직접 방문한 적도 거의 없는 깊이까지 오염이 도달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Q. 심해 광물 채굴이 왜 문제가 되나요?

    A. 해저에 있는 망간 단괴 안에는 전기차 배터리와 스마트폰 생산에 필요한 코발트·니켈 같은 희귀 금속이 포함되어 있어 경제적 가치가 높습니다. 문제는 채굴 과정에서 해저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전체 심해 면적의 1%도 탐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개발을 시작하면, 아직 발견조차 되지 않은 생물들이 이름도 알기 전에 멸종할 수 있습니다.

     

    결론

    마리아나 해구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그저 신기한 심해 생물 모음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이 이야기는 '생명이 어디까지 적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을 얼마나 빨리 파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동시에 던지고 있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자연을 더 많이 지배한다고 느끼기 쉽지만, 제 생각은 반대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심해 생물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능력만큼, 발견한 것을 신중하게 지키는 태도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생명체를 찾는 일과, 이미 살고 있는 것들을 망가뜨리지 않는 일, 이 두 가지는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437OK121Nx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