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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뻔한 감동 코드로 범벅된 할리우드 리메이크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전신마비 재벌과 전과자 출신 간병인이라는 설정만 보고 결말까지 다 그려지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제일 먼저 깨진 건 줄거리 예측이 아니라 제 선입견이었습니다. 2019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업사이드(The Upside)'는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Intouchables, 2011)'을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작으로, 브라이언 크랜스톤과 케빈 하트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선입견 — 이 영화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기 전에 가장 크게 오해했던 부분은 '감동 공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는 흔히 '장애 포르노(inspiration porn)'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여기서 inspiration porn이란 장애인을 주체적인 인물이 아닌 비장애인의 감동을 위한 도구로 소비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이 용어는 호주 장애인 활동가 스텔라 영(Stella Young)이 2014년 TED 강연에서 본격적으로 제시한 개념입니다(출처: TED).
업사이드는 이 함정을 상당히 영리하게 비껴갑니다. 전신마비(quadriplegia) 상태의 필립은 사지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지만, 영화 안에서 그는 늘 이야기의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여기서 quadriplegia란 척수 손상 등으로 인해 양팔과 양다리 모두 기능을 잃은 상태를 말합니다. 필립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억대 자산가이며, 간병인 델을 직접 선발하는 결정권자입니다.
반면 전과자 출신의 델은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가족과의 관계도 어그러진 상태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설정이라면 '재벌이 어려운 사람을 구원한다'는 서사로 흘러가기 쉬운데, 업사이드는 그 반대 방향도 동시에 보여줍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델이 실업급여 서류에 서명을 받으러 들어갔다가 면접을 치르게 되는 장면입니다. 필립 주변에는 스펙 좋은 지원자들이 줄을 서 있었지만, 그는 가장 뻔뻔하고 아무것도 갖춘 게 없는 델을 선택합니다. 이 선택 자체가 이미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었죠.
- 원작: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Intouchables, 2011)' — 실화 기반
- 리메이크: 닐 버거 감독, 브라이언 크랜스톤·케빈 하트 주연 (2019)
- 필립의 장애 설정: 전신마비(quadriplegia),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아내를 잃은 후 삶의 의지 상실
- 델의 설정: 간방(교도소) 출소 후 취업 실패, 아내·아들과 별거 중인 전과자
케미분석 — 왜 이 두 사람이 잘 맞는가
영화를 보면서 제가 계속 따라간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왜 필립은 델을 내보내지 않는가?" 세 번의 실수를 저지르면 아웃이라는 규칙이 있었는데, 델은 초반부터 연속으로 실수를 쌓아갑니다. 도관 교체는 엉망이고, 무단이탈도 저지르고, 매 순간 불평불만을 늘어놓습니다.
그런데도 필립이 델을 붙잡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델은 필립을 '환자'나 '장애인'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동정이나 과잉 배려 없이 그냥 한 사람으로 대합니다. 뮤지컬을 보러 가서 농담을 주고받고, 핫도그 가게에 들어가서 1,500개를 주문하는 드립을 치고, 페라리에 함께 타고 질주합니다. 이런 상호작용 방식은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상화(normalization)'와 맞닿아 있습니다. normalization이란 장애나 질병을 가진 사람을 특별한 예외 취급 없이 일상적 관계 안에 통합하는 접근 방식을 의미합니다(출처: WHO 정신건강 보고서).
제가 특히 주목했던 장면은 델이 필립의 릴리에 대한 감정을 끌어내는 부분이었습니다. 필립은 1년 가까이 파란 편지를 받으면서도 답장 한 통 제대로 못 보내고 있었습니다. 델은 그 상황을 단 한 마디로 정리해버립니다. "전화해." 지나치게 신중하게 감정을 포장하려는 필립에게 델의 직접성은 오히려 촉매제가 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종류의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만이 배려가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밀어주는 것도 배려일 수 있다는 거죠.
두 사람의 케미가 진짜처럼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델도 필립을 통해 변하기 때문입니다. 델은 주급을 받으면 전부 아내에게 보내고, 필립의 책을 읽기 시작하고,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방향이 일방적이지 않다는 점이 이 영화 케미의 핵심입니다.
배려의 재정의 — 이 영화가 남긴 가장 긴 여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감동적인 장면 몇 개를 집어넣고 마무리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난 뒤에도 꽤 오래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나는 누군가를 배려한다고 생각할 때 실제로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대하고 있는가?"
영화 후반부에서 델은 필립을 패러글라이딩 장소로 데려갑니다. 필립은 아내를 잃은 그날 이후 하늘을 다시 날지 못했는데, 델은 어떤 긴 설명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데려갑니다. 이 장면의 힘은 델이 필립에게 '괜찮겠냐'고 묻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냥 갑니다. 이 접근 방식은 임상심리학에서 말하는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와 유사한 맥락입니다. behavioral activation이란 우울이나 무기력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먼저 행동을 유도함으로써 감정 변화를 이끄는 치료적 기법을 말합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후반부에서 필립이 델을 해고하고, 다시 관계가 회복되는 흐름이 다소 빠르게 처리됩니다. 제가 느끼기엔 두 사람 사이의 신뢰가 실제로 쌓이는 데 걸렸을 시간에 비해 갈등 해소가 지나치게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신뢰 회복은 대개 그렇게 선형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 부분이 전체 흐름을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가지고 간 생각은 이겁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우리는 직업, 재산, 건강 상태 같은 외부 조건에 먼저 반응합니다. 그런데 업사이드는 그 조건들을 거의 무력화시켜 버립니다. 재벌이지만 혼자 숨쉬기도 어렵고, 전과자이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게 사람을 대합니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지, 영화는 끝까지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 여백이 이 영화를 꽤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업사이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가요?
A. 직접 원작은 2011년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Intouchables)'이고, 언터처블 자체가 실화를 기반으로 합니다. 실제 인물은 전신마비 프랑스 귀족 필리프 포조 디 보르고와 그의 간병인 압델 셀루였습니다. 업사이드는 이를 할리우드 배경으로 옮긴 리메이크작이므로 실화와의 거리는 한 단계 더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Q. 원작 언터처블과 업사이드 중 어떤 게 더 낫다고 보시나요?
A. 제 경험상 이건 취향의 문제이지 우열의 문제는 아닙니다. 언터처블은 더 거칠고 날 것의 감정선이 강하고, 업사이드는 케빈 하트 특유의 코미디 감각 덕분에 훨씬 가볍게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업사이드로 시작한 뒤 원작을 보는 순서를 추천합니다.
Q. 영화에서 필립의 장애 원인이 뭔가요?
A. 영화 속에서 필립은 아내와 함께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낙뢰를 맞는 사고로 전신마비 상태가 됩니다. 그 사고에서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필립은 이후 삶의 의지를 잃어가는 상태로 그려집니다. 이 배경이 그가 간병인을 뽑는 태도와 릴리에게 답장을 못 보내는 심리적 맥락을 설명해줍니다.
Q. 장애를 다루는 방식이 불편하지는 않았나요?
A.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영화가 장애를 감동의 도구로만 쓰지 않으려고 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필립이 항상 서사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결정을 내리는 주체로 그려지기 때문에 불편함보다는 자연스러움이 앞섰습니다. 다만 일부 장면에서 장애를 개그 소재로 쓰는 부분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결론
업사이드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덜 울리고, 훨씬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억지로 눈물을 끌어내려 하지 않고, 두 사람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배려란 무엇인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이렇게 유쾌하게 던지는 영화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관심이 생기셨다면 원작인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과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같은 이야기가 문화적 맥락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번역되는지 비교해 보는 것 자체로도 꽤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제 경우엔 그 비교 과정에서 배려와 관계에 대한 생각이 한 층 더 구체화됐습니다.